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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인생사 및 배경과 책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서 감명 깊었던 명언을 일부 정리한 1편에 이어,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서 감명 깊었던 명언 구절 2편이다.
※ 위에 언급한 이전 글은 아래에 함께 볼 수 있도록 링크를 남겨두었다.
행복이란 단어를 제거하면 행복할 수 있다
- 내가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뭔가를 얻기보다는 뭔가를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라는 것이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가난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강해지려는 욕심을 버리고, 병에 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즐겁게 놀기보다는 욕을 먹거나 비난받지 않도록 한다. 이것은 다분히 현실적인 생활 수칙이다. 이 수칙들을 지킨다면 작지만 확실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인생은 불행해지기는 쉬워도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위선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그 선택이 지혜의 시작이다. 인생의 지혜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어떤 상태가 되더라도 크게 놀라지 않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 중용의 미덕이다. 크게 실패해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는다. 크게 성공해도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게, 사실 크게 휘둘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엔 이렇듯 위선의 함정만 잘 피해 나가도 이른 나이에 삶을 통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것이 최고다
- 모든 원인은 피로 때문이다. 삶에 지쳐버렸을 땐 냉정한 반성이 불가능하다. 억지로 반성하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우울이라는 덫에 걸려버린다. 지쳤을 땐 반성하는 것조차 피곤하다.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는 것도 지겹고, 일기 같은 걸 쓰는 것도 괴롭다.
- 반성하고 있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한심스레 여기고 있으며, 타인을 증오하는 중이고, 영혼과 육신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이럴 땐 그저 쉬는 게 최선이다.
- 반성은 자기혐오다. 자기 자신이 하찮게 느껴질 때 인간은 뭔가 반성할 만한 건수가 없는지 두리번거린다. 뭘 해도 기운이 나지 않을 때 인간은 무턱대고 반성하며 자아를 성찰한다. 그럴 바에야 아무 생각 없이 잠자리에 드는 편이 낫다.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것이 최고다. 도박도, 기도도, 명상도 도움이 안 된다. 여행도 도움이 안 되고, 술을 먹어봐야 자기혐오만 짙어질 뿐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혐오스러운 오늘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괴롭다면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평소보다 더 많이 자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새로운 시작을 펼쳐 나가면 되는 것이다.
'사유'를 통해 인간은 인간다워진다
- 행복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행복을 활동 그 자체로 본다. 행복하다는 것은 내가 지금 잘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잘 산다고 느끼는 까닭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요약하자면 행복은 '잘 하고 있다'는 지속이다.
- 자신이 원했던 형상 내지는 상태를 획득하는 것을 두고 나는 성숙이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행복은 성숙한 인간이 되는 모든 과정의 연속이다. 따라서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상태와 과정도 행복이다.
- 행복이 인간의 목표라고 한다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순간은 이미 행복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잘살아야 하는데, 잘사는 것은 특수한 기술이나 기능의 점진적 향상이 아니다. 잘산다는 말은 인간성이 원활히 발휘되고 있다는 뜻이다. 즉 인간성이야말로 인간 행복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 인간성이란 인간다운 기능이다. 인간의 기능은 생식, 감각, 사유로 나뉜다. 생식은 식물도 하는 일이며, 감각은 동물에게도 있다. 하지만 사유는 오직 인간에게만 내재된 기능이다. 사유를 통해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사유를 인생의 본질로 삼았을 때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따라서 행복은 사유다. 생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선한 삶이고, 삶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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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두 개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
- 우정의 성격은 차분한 한결같음이다. 변한다면 그것은 우정이 아니다. 들뜬다면 그 또한 우정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계산이며, 들뜨는 것은 사랑이다.
- 내 친구가 그곳에서 할 일이 있듯이 나 또한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는 마음의 여유와 가치관이 우정의 진리다. 그 같은 마음의 여유와 가치관이 없는 우정은 언제 눈금이 달라질지 모르는 저울이며, 흥분이 가라앉은 뒤에서 찾아오는 배신감이다.
- 친절과 우정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친절이 그의 인격에 대한 감탄이라면 우정은 친구의 영혼을 위한 헌신이다. 감탄은 그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동시에 사라지지만 헌신은 그의 그림자를 바라봄으로써 더욱 애잔해진다. 친절이 상대방의 감사로 만족한다면 우정은 친구의 행복으로 만족한다.
- 우정은 두 개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 우정을 가진 자는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자다. 한 영혼이 쓰러지더라도 곁에 있는 또 다른 영혼이 그를 일으켜 세운다. 어떤 경우에도 둘이 함께 쓰러지는 법은 없다. 삶이 인간에게 우정을 선물한 까닭이다,
- 우정은 겉으로 드러나는 고상한 만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의 내면에 자극이 되고, 분발하려는 촉진제가 되어야 한다. 함께 진보하지 않는 우정은 나태와 방종이다.
나를 사랑하는 친구는 나의 슬픔을 쫓아내고, 나로부터 웃음 짓기를 원하는 친구는 내게 슬픔을 가져온다
- 한 가지라도 배울 점이 있는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해야 한다.
- 배울 점이 많은 친구를 사귀는 대신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친구로 둔다는 것은 그의 그늘에 가려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돋보이게 해주는 친구를 원한다.
-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함께 식사하고 술을 나눠 마시는 정도로 좋은 친구를 곁에 뒀다고 자위한다.
- 세상에는 참된 우정과 그릇된 우정이 있다. 그릇된 우정의 목표는 쾌락이고, 참된 우정의 목표는 인생의 풍부한 결실, 다시 말해 성공을 기약하는 우정이다. 그러므로 우정은 우연에 맡겨서는 안 된다. 나를 사랑하는 친구는 나의 슬픔을 쫓아내고, 나로부터 웃음 짓기를 원하는 친구는 내게 슬픔을 가져온다.
-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끈기가 없으므로 호감은 언제든지 반감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오래 사귄 친구이더라도 그의 마음은 나의 눈동자보다 더 약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연약한 마음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 불행을 혼자 감당하려는 것보다 무의미한 만용은 없다. 당신 곁에서 당신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당신의 잘못에 대해 함께 용서를 구하려는 친구를 가져라. 가혹한 운명과 매정한 대중도 두 사람을 동시에 공격하지는 못한다. 성공과 행복뿐 아니라 불행과 절망도 함께 나눴을 때 그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
- 마지막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사소한 일에 친구의 호의를 이용하는 것은 우정이 아니다.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를 대비해 친구의 호의를 소중히 간직해둔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가 없다. 하지만 너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가능하다. 너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너를 동정할 수는 있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보듬고 안아줄 수 있다.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는 없지만, 아끼고 감싸줄 수는 있다.
- 인간은 일해야 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노동에 뛰어들어야 한다. 노동은 인간에게 땀방울을 요구한다. 땀방울은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의미에 대해 눈을 뜨게 만든다. 이것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죽어버린 사회다.
- 인생에서 가장 애처로운 시간은 먼 훗날, 관 속에 누울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을 때, 일생을 헛된 욕망을 좇느라 세월을 탕진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는 한 번 더 시간이 주어지기를 가만히 소망해 보는 때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 자의식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나와 나의 관계가 온전히 성립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와 나의 관계도 온전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온전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며, 허영이며, 교만이다.
※ 함께 이해하면 도움 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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